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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의 피부미용 역사에 대해 알아보자
가) 이집트(Egypt)
고대문명의 중심지인 이집트인들의 피부미용은 자연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 대부분인데, 이집트의 더운 기후로 인하여 피부손질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올리브 오일, 양모, 왁스, 꿀, 우유, 아몬드 기름 등을 발라 자외선에 노출된 피부를 보호하였다. 또한 자갈흙, 밀기울, 계란 노른자, 꿀, 우유 등을 혼합하여 얼굴에 발라 검게 탄 피부를 보호하고 열을 진정시켜주는 역할도 하였다. 또한 청결을 중시하여 잦은 목욕을 하였고 그들만의 목욕법을 만들어 건강하고 아름다운 피부를 가꾸었다. 이 피부관리 방법 중 클레오파트라(Cleopatra)의 나귀 목욕법이나 어린이의 오줌 목욕법은 오늘날까지 알려질 정도로 유명하다.
나) 그리스(Greece)
헬레니즘 사상을 받아 건강한 정신이 신체에서 비롯된다는 믿음으로 목욕, 운동, 마사지 등 신체를 관리하였으며 목욕 문화가 발달하였다.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는 미용식, 일광욕, 특수 목욕, 마사지 등을 권장하였으며, 갈렌(Gallen)은 보습 및 피부 보호가 되는 콜드크림을 개발하였다. 이 시대에는 최상의 여인이나 남성만이 화장품을 사용할 수 있었다.
다) 로마(Roma)
내적인 아름다움과 외적인 아름다움을 중시하는 로마인들은 그들의 가치와 생활 습관 때문에 향수, 오일, 화장이 생활의 필수품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로마의 의사 갈렌(Gallen)은 최초로 콜드크림의 시초인 시원해지는 연고를 만들었고 약학(藥學, pharmacy), 생리학(生理學, physiology), 해부학(解剖學, anatomy) 등의 저서도 남겼다. 로마인들은 그리스의 목욕 문화를 이어 받아 스팀 목욕법과 한증 목욕법이 개발되어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목욕 문화가 확립되었으며 미백의 피부를 유지하기 위해 레몬, 염소젖, 우유 등을 혼합하여 마사지를 하였고 아름다운 몸매를 유지하기 위한 전신 체조를 하였다. 로마는 남녀 상관없이 아름다운 피부와 몸매를 가꾸는 일에 과도하게 투자하였는데, 그 예로 네로 황제의 부인을 뽑을 수 있다. 그녀는 매일 암탕나귀들로부터 젖을 받아 우유로 목욕을 하였고 매일 아침 화장을 위해 100여명의 노예를 동원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라) 중세
중세의 에스테틱 문화는 공중목욕탕이 생기면서 이제까지 특권층에서 해오던 목욕 문화가 서민층까지 전파되는 계기가 되었다. 중세에는 끓는 물에 사루비아, 로즈메리, 보리수 꽃 등 여러 약초를 넣어 얼굴에 수증기를 쬐는 약초 스팀법이 개발되었다. 또한 화장품 제조에 필수성분인 알코올도 발명되었다. 중세의 학자들은 미용에 관련된 많은 책을 편찬하였는데 기 드 숄리아크(Guy de Chauliac)의 『외과학북』, 알드브랑 댕 드 시엘의 『육체의 식이 요법』, 랑프랑 드밀랑의 『대외과학』 등은 오늘날의 미용학 연구에도 큰 도움이 된다.
마) 르네상스(Renaissance)
그리스 로마 문화를 지향하였으며 십자군의 귀향은 향장산업의 발전을 가져왔다. 이로 인해 정제된 화장수를 사용하였는데 이는 알코올 증류법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현재의 화장수와 유사한 형태이다. 이 시기에는 체취 제거를 위해 향수를 과도하게 사용하였으며, 몽테뉴의 저서에는 팩과 크림에 관한 처방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엘리자베스 여왕(Elizabeth)은 스스로 화장품을 제조하기도 하였다.
바) 근세
19세기 위생과 청결의 중요성 때문에 비누의 사용이 보편화되었으며 산업혁명으로 화장품의 기술 및 원료가 개발되었다. 또한 왕족의 전유물이었던 크림과 로션 등을 일반 시민이 만들어 사용하였고, 1866년 산화아연이 개발되어 백납분보다 안전한 분을 사용할 수 있었다. 또한 훗페란트는 마사지를 권장하였으며 세안크림을 제조하였다.
사) 현대
20세기의 에스테틱 문화는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시대로 흘러갔다. 1901년 마사지 크림이 개발되었고, 1907년에는 샴푸가 생산되었으며, 1908년에는 손톱에 아름다움을 입혀주는 폴리쉬(에나멜)가 개발되어 많은 여성들이 사용하였다. 1912년 폴란드의 화학자 퐁크에 의해 비타민이 발견되고 내분비 호르몬과 그의 자연현상이 과학적으로 발견되어 피부생리학에 밝은 앞날을 예고하였다.
20세기에는 화장품 산업이 대량화되고 급속하게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된 사건이 있었는데, 바로 1914년에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이다. 전쟁으로 인하여 향장산업이 군수산업으로 참여하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대량생산화되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그 후 각각의 헤어, 메이크업, 피부, 네일 등의 뷰티숍이 생겨났고 여성들은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관리와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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